여행과 일상 그 사이.
해외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늘 단골 순댓국집을 간다는 친한 동생처럼 한 달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갈 무렵이 되니, 단골집의 쌀국수가 생각이 났다.
일상에서 먹던 어떤 음식이 여행의 막바지에 생각난다는 게 여행에 마침표를 찍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일종의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 산더미처럼 쌓인 짐부터 정리하고 쌀국수는 늦은 점심으로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한 달 넘게 집을 비워두면서 났던 먼지 냄새와 집에서 느껴지던 왠지 모를 낯선 느낌은 환기를 하고, 일상의 소음이 더해지니 비로소 익숙한 우리 집의 느낌이 난다.
여행을 다녀온 게 한 달이 조금 넘는데 그 사이 집 주변 풍경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느린 영국의 공사 속도를 생각하면 역 근처에 몇 년째하고 있던 공사는 한 달 사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진척이 되어서 이제는 정말? 마무리가 되어가는 것만 같고, 4월에 이미 30도가 넘었던 스페인 날씨에 비하면 아직 겨울 같은 날씨지만, 한결 기온이 포근해진 게 분명한지 나무와 풀들이 부쩍 자라서 연두색 잎들을 반짝이고 있다. 뜨거웠던 스페인의 햇살 때문에 낮시간에 다니는 게 힘들었는데 푸르른 나무와 들판을 보는 것도, 시원한 공기도 너무나 반갑다.
조금 늦게 점심을 먹으러 간 쌀국수 가게에서 메뉴판을 보니 한 달 사이에 가격이 꽤 많이 올랐다.
이 가격이면 스페인에서 와인 한 병 포함한 3 코스의 Menú del día를 먹을 수 있는데.. 하는 가벼운 탄식을 하다가… 그래 여긴 영국이지! 하고 다시 한번 우리가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음을 느낀다.
쌀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식당 앞의 포르투갈 식료품 가게에서 에그타르트로 가벼운 입가심을 하며 포르투갈에서 먹었던 에그타르트와 비교를 해보기도 하면서 여행의 여운을 조금 더 느껴본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영국으로 돌아와 있지만 아직 여행과 일상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포함해서 앞으로 갈 다른 긴 여행은 코로나와 여러 사정으로 몇 년간 미뤄졌던 여행이었다.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에 비해 첫 여행지와 여행 시기는 조금 과장해서 즉흥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결정이 되었다.
그렇게 급하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다행히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다녀왔고, 무척이나 즐거웠고, 여러 생각들을 하게 해 준 여행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시도해 보려고 하는 일상과 여행이 공존하는 삶의 시작으로서는 여러 고민과 숙제를 남겨준 여행이기도 하다.
여행을 마치고 페리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많은 얘기들을 나누면서 우리의 여행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 다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끝에 뭔가 명확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이번 여행을 정리하다 보면 우리의 생각들도 조금 더 정리가 되고 앞으로의 방향도 조금은 더 뚜렷해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그런 이유에서 나의 여행 일기는 다른 여행 스토리처럼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가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거나 여행에 중요한 팁이 될 만한 정보보다는 여행에 대한 감상과 어떻게 하면 여행이 일상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 같다.
그럼 스페인, 포르투갈 로드 트립 복기를 시작해 보겠다.
'여행하는 일상 > 유럽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포르투갈 38일 캠핑카 여행_ 5. 스페인 북부, Picos de Europa (2). (2) | 2024.01.31 |
---|---|
스페인, 포르투갈 38일 캠핑카 여행_ 4. 스페인 북부, Picos de Europa (1). (3) | 2024.01.18 |
스페인, 포르투갈 38일 캠핑카 여행_ 3. 스페인 도착, Orbaneja Del Castillo (2) | 2024.01.06 |
스페인, 포르투갈 38일 캠핑카 여행_ 2. 영국 > 스페인 이동. (2) | 2023.12.06 |
스페인, 포르투갈 38일 캠핑카 여행_ 1. 완벽하지 않은 여행 준비 (0) | 2023.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