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여행 준비.
사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여행 준비는 차종 변경이었다.
그동안 한번 모델 업그레이드를 하긴 했지만 7-8년을 사용했던 차종은 VW California였는데, 이번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은 기존 차종보다 큰 모델인 Grand California로 차를 바꾸고는 처음 가는 여행이었다.
VW California는 높이 2m 제한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일반 승용차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고, 그래서 도시나 시골의 좁은 길을 다니는데도 큰 문제가 없고 페리 비용이나 기타 비용들도 큰 승용차/소형밴과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가 되어서 비용적인 부분에서도 사용하는 동안 만족스러웠다.
그럼에도 차종을 변경하기로 한 이유는 일주일 내외의 여행엔 큰 문제가 없지만 한 달 이상 장기간 여행을 떠나기에는 여러 가지 불편한 부분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사실 차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해 왔었고, 남편이 VW 센터와 California Club(영국 최대 규모의 VW 캠핑카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세와 매물들은 늘 확인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상 차종 변경을 결심하고 구매하는 데는 2-3개월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언제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떠날 좀 더 긴 여행의 Test Drive로 생각하고 가는 여행이기도 해서,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정리를 하다 보니 이전 차에서 사용하던 것들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생겨서 새로 사야 하는 것들이 생겼다.
살림을 줄이고 가능한 가볍고 간소하게 살자는 다짐과 반대로 큰 차로 바꾸고 그렇게 두 집 살림이 아닌 두 집 살림을 하게 된 상황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지만 이것도 좀 더 간소한 삶으로 가는 과정일 거라고 스스로 최면? 위로?를 하면서 가능한 불필요한 구매는 자제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캠핑카 여행의 큰 장점이 이동/숙박/식사의 많은 부분이 캠핑카로 해결이 되어서 큰 루트를 정하고 첫 숙박 장소를 정하면 이후의 일정은 이동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 준비는 스페인으로의 이동 방법과 첫 도착지/숙박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먼저 영국에서 스페인으로 이동은 크게 2가지 방법이 있다.
1. 페리나 유로 터널을 통해 프랑스나 네덜란드로 건너간 후에 차로 이동
2. 영국에서 페리를 타고 스페인으로 바로 이동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일단은 여행 시작 전에 에너지를 좀 절약하는 쪽이 좋을 것 같아서 2번 옵션으로 결정을 하고 페리 티켓을 예약했다. 스페인까지의 거리가 꽤 있어서 페리만으로도 2박 3일을 보내야 하는 일정이다.
그리고 페리로 스페인에 도착한 후 여행 경로는 페리가 정박하는 산 탄데(Santander)를 기준으로 북서스페인 > 포르투갈 서쪽 해안 > 포르투갈 남부, 스페인 남부 > 스페인 남동부 > 스페인 중부 내륙-스페일 북부의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큰 이동 경로를 기준으로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잡기로 하고, 첫 1주는 북부 스페인에 Picos de europa 주변을 걷고 Galicia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여행지 정보와 현지 생활 관련 정보들을 알아보면서 노트북 외에 배터리, 케이블처럼 현지에서 갑자기 사려면 비싸거나 구하기 힘들 것 같은 짐 준비에 신경을 쓰고, 차에서 의식주가 해결이 되어야 하니 차의 공간에 맞게 생필품들은 시간이 될 때마다 미리 준비를 해서 구비를 해뒀다.
출발 1-2주 전쯤부터는 오랜 시간 비울 집을 정리를 하고 기본적인 식료품도 장을 봐서 채워 넣었다. 차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챙기는 것까지 마치고 나니 집 한편에 차에 실을 짐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렇게 리스트를 적고 체크까지 해가면서 미리 준비물을 챙기지만 분명히 없거나 빠지는 것들이 생기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여행지에 가면 생각지 못했던 필요와 변수가 생길 거란 건 너무나 당연하니 사실 완벽한 준비란 건 있을 수가 없기도 하고, 그렇게 마음을 조금 헐렁하게 먹어야 여행하는 내내 뭔가 준비 못한 것이 생겼을 때 조금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유연하게 대처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상황이나 필요가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이기는 하다.
한때는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약간의 강박증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 길 위의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제는 뭔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도 적응하며 다니는 여유와 융통성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여행 중에 생기지 않을 일들에 대해 미리 걱정하며 조바심 내기보다는여행 준비를 마치고 이제는 정말 떠난다는 홀가분한 마음이과 기대를 가지고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여행 준비를 마무리한 우리는 다음날 새벽 출발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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